플리백

리뷰
어떤 이야기인가
런던에서 기니피그를 테마로 한, 망해가는 카페를 운영하는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진짜 이름 대신 ‘플리백(Fleabag, 지저분한 사람)’이라는 별명으로만 그를 알게 됩니다. 그는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기고, 시니컬한 농담을 던지며, 카메라, 즉 시청자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겉보기엔 쿨하고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듯했지만, 그 내면은 가장 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남긴 깊은 죄책감과 슬픔으로 곪아 있었습니다.
그의 가족 관계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지만 신경질적이고 위태로운 언니 클레어와는 애증으로 뒤엉켜 있었고, 아내를 잃은 슬픔에 잠겨 소통을 포기한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와 재혼하려는 뻔뻔한 대모와의 관계는 매 순간이 지뢰밭 같았습니다. 플리백은 이 모든 혼란 속에서 가벼운 관계와 날 선 유머로 자신을 방어했지만, 그럴수록 고립감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드라마는 플리백이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서툴게나마 세상과 다시 관계 맺으려는 과정을 따라갔습니다. 특히 시즌 2에 등장한 ‘섹시한 신부’와의 만남은 그의 삶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났지만, 그 관계는 처음부터 금지된 것이었습니다. 플리백은 이 위태로운 관계 속에서 신앙, 사랑, 그리고 구원의 의미를 되물으며 자신의 바닥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잘된 것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는 단연 ‘제4의 벽’을 허무는 독창적인 연출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시청자에게 윙크를 하거나 속마음을 털어놓는 연출은 단순한 기법을 넘어, 그의 지독한 외로움을 드러내는 핵심 장치로 기능했습니다. 주변 인물들과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그가 오직 스크린 너머의 우리에게만 의지하는 모습은, 시청자를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그의 유일한 공모자이자 비밀 친구로 만들었습니다. 이 영리한 설정은 캐릭터에 대한 깊은 몰입과 연민을 자아냈습니다.
피비 월러-브리지가 직접 쓰고 연기한 ‘플리백’ 캐릭터는 현대 드라마 역사상 가장 입체적인 여성 인물 중 하나로 기억될 만했습니다. 그는 자기 파괴적이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뻔뻔하기까지 했지만, 그 모든 결점 아래에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사랑받고 싶은 열망이 있었습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지독하게 현실적이었던 이 캐릭터는 시청자에게 불편함과 동시에 강렬한 공감을 안겨주며,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비극과 희극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대사들은 매 순간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아쉬운 것
물론 이 작품의 스타일이 모든 시청자에게 편안하게 다가가지는 않았습니다.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와 자기 파괴적인 주인공의 모습은 가벼운 코미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웃음으로 포장하는 방식은 때로 감정적인 소모를 요구했고, 인물들이 겪는 혼란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시청 과정이 버겁게 다가오는 순간들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이야기의 밀도가 워낙 높아 한 시즌이 6개의 에피소드로 짧게 끝난다는 점 역시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특히 매력적인 주변 인물들의 서사가 더 깊게 다뤄지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는 인상을 줬습니다.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시즌 2의 고해성사 장면이었습니다. 오직 시청자만이 알고 있던 그녀의 비밀스러운 시선을 신부가 알아차리는 순간, 스크린 너머의 안전지대가 무너지는 듯한 서늘함과 함께 이 인물이 마침내 진정한 연결을 갈망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출연진 및 감독
출연진
- 피비 월러-브리지 (Phoebe Waller-Bridge) — 플리백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카페 주인) / 이 작품의 각본과 주연을 맡아 에미상과 골든글로브를 휩쓸었습니다.
- 시안 클리포드 (Sian Clifford) — 클레어 (성공했지만 강박적이고 불안정한 플리백의 언니)
- 올리비아 콜먼 (Olivia Colman) — 대모 (플리백의 아버지와 재혼하려는 수동 공격적인 예술가)
- 앤드류 스콧 (Andrew Scott) — 신부 (시즌 2에 등장해 플리백의 삶을 뒤흔드는 매력적인 인물)
- 빌 패터슨 (Bill Paterson) — 아빠 (감정 표현에 서툴러 딸들과 거리를 두는 아버지)
감독
- 해리 브래드비어 — 킬링 이브, 에놀라 홈즈 등을 연출한 감독.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감각적인 영상과 속도감 있는 편집으로 담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분께 추천
- 날카로운 대사와 영국식 블랙 코미디를 즐겨 보시는 분
- 완벽하지 않기에 더 현실적인 여성 캐릭터의 성장을 보고 싶으신 분
- ‘제4의 벽’을 허무는 독창적인 연출에 흥미를 느끼시는 분
한 줄 결론
리뷰 점수 8.8 / 10 — 고통을 웃음으로 포장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지독하게 아프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