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어떤 이야기인가
미국에서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민자 에블린 왕(양자경)의 삶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세금 문제로 국세청의 조사를 받게 된 최악의 날,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는 이혼 서류를 내밀고,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완고한 할아버지에게 소개하겠다며 그녀의 속을 긁었습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던 바로 그 순간, 에블린의 인생은 상상조차 못 한 방향으로 뒤틀렸습니다.
국세청 건물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자기 남편 웨이먼드가 돌변했습니다. 자신을 다른 차원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라고 소개한 그는, 멀티버스 전체가 ‘조부 투바키’라는 강력한 빌런에 의해 붕괴될 위기에 처했으며, 수많은 우주 속 가장 실패한 삶을 사는 바로 ‘이곳의 에블린’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에블린은 영문도 모른 채 다중우주의 운명을 짊어지고 거대한 혼돈 속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에블린은 ‘버스 점핑’이라는 기술을 통해 다른 차원의 자신이 가진 능력을 끌어오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이 핫도그인 세상, 인간과 너구리가 함께 요리하는 세상, 모두가 돌멩이로 존재하는 세상까지, 정신없는 다중우주를 넘나들며 쿵푸 마스터, 유명 배우, 철판 요리사 등 각양각색의 자신과 접속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능력으로 조부 투바키의 추종자들과 맞서 싸우며 점차 전사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빌런, 조부 투바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 우주의 딸, 조이였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경험하며 허무주의에 빠져버린 딸을 마주한 에블린의 싸움은 이제 우주를 구하는 임무를 넘어, 붕괴 직전의 가족을 구원하고 흩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처절한 사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현란한 액션 속에서 잊고 있던 남편의 다정함과 딸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발견해야만 했습니다.
잘된 것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멀티버스’라는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으로 풀어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니얼스 듀오 감독은 B급 영화의 과장된 유머, 홍콩 무술 영화의 현란한 액션, 그리고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하나의 용광로에 넣고 완벽하게 녹여냈습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이미지의 향연 속에서도 영화는 단 한 순간도 이야기의 핵심을 놓치지 않았고, 그 혼돈 자체가 곧 주인공 에블린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로 기능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양자경은 고단한 이민자 엄마의 피로한 얼굴부터 우주를 구하는 쿵푸 마스터의 카리스마까지, 한 인물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을 스크린에 완벽히 새겨 넣었습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키 호이 콴은 어수룩해 보이지만 그 안에 가장 단단한 사랑을 품고 있는 웨이먼드 캐릭터를 통해 영화의 심장을 책임졌고, 스테파니 수는 파괴적인 빌런과 사랑받고 싶은 딸의 모습을 오가며 놀라운 에너지를 뿜어냈습니다. 이들의 앙상블은 아카데미가 왜 그들에게 트로피를 안겼는지 증명하고도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 너머에 있는 따뜻한 메시지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민자 가족의 애환, 세대 간의 갈등,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 그리고 그 모든 혼돈을 이겨내는 힘이 결국 ‘다정함’과 ‘사랑’에 있다는 결론은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진리를, 가장 기발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쉬운 것
영화의 장점인 끊임없이 몰아치는 에너지와 정보량은 일부 관객에게는 피로감으로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139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는 현란한 편집과 쉴 새 없는 유머, 잦은 세계관의 전환은 때때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벅차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중반부는 새로운 멀티버스를 소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잠시 호흡이 늘어지는 인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화 특유의 B급 감성과 과장된 유머는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지점이었습니다. 핫도그 손가락이나 ‘라따구리(Raccacoonie)’ 같은 설정은 기발했지만, 영화가 던지는 진지한 철학적 메시지와 충돌하며 톤의 불균형을 느끼게 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유머가 때로는 감정적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모든 혼돈이 잦아든 뒤 주차장에서 웨이먼드가 에블린에게 ‘다정함(kindness)’으로 싸우자고 설득하던 장면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 영화의 현란한 외피 속에 숨겨진 진정한 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출연진 및 감독
출연진
- 양자경 (Michelle Yeoh) — 에블린 왕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자이자 다중우주를 구할 영웅) / 2023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
- 키 호이 콴 (Ke Huy Quan) — 웨이먼드 왕 (에블린의 다정한 남편) / 아역 배우 출신, 2023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
- 스테파니 수 (Stephanie Hsu) — 조이 왕 / 조부 투바키 (에블린의 딸이자 멀티버스를 위협하는 존재)
- 제이미 리 커티스 (Jamie Lee Curtis) — 디어드리 보베어드라 (까다로운 국세청 직원) / 2023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 제임스 홍 (James Hong) — 공공 (에블린의 아버지)
감독
- 대니얼 콴, 대니얼 셰이너트 — 독창적 상상력을 B급 코미디와 결합하는 듀오 감독. 전작으로 스위스 아미 맨이 있으며, 기발함과 감동을 동시에 잡는 연출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이런 분께 추천
- 기존의 멀티버스 영화에 식상함을 느끼셨던 분
- B급 코미디와 깊이 있는 철학의 결합을 즐기시는 분
- 화려한 액션과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동시에 원하시는 분
-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배우들의 명연기를 확인하고 싶으신 분
한 줄 결론
리뷰 점수 8.8 / 10 — 혼돈의 스펙터클로 빚어낸,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가족 서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