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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떤 이야기인가
1983년, 이탈리아 북부의 햇살 가득한 여름. 고고학자인 아버지를 둔 17세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가족 별장에서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나른하지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매년 여름 그랬듯, 아버지의 연구를 돕기 위한 보조 연구원이 별장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올리버(아미 해머), 미국에서 온 24세의 자신감 넘치고 지적인 청년이었습니다.
엘리오는 처음부터 올리버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꼈지만, 그 감정의 정체를 몰라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는 퉁명스러운 태도로 올리버를 밀어내거나, 여자친구 마르치아와 어울리며 애써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함께 마을을 누비고, 수영을 하고, 밤늦도록 지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걷잡을 수 없이 가까워졌습니다. 올리버 역시 영특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엘리오에게 점차 빠져들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우정이 아님을 인정하고, 6주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을 나눴습니다. 한여름의 열병처럼 찾아온 첫사랑은 찬란했지만, 여름의 끝과 함께 찾아올 이별의 그림자는 두 사람의 관계 위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 짧고 강렬한 사랑이 한 소년의 인생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따라갔습니다.
잘된 것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는 단연코 1980년대 이탈리아의 여름 공기 그 자체를 스크린에 완벽하게 구현해낸 미장센이었습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작열하는 태양, 싱그러운 과일, 나른한 오후의 햇살, 밤의 귀뚜라미 소리까지 모든 감각을 동원해 관객을 1983년의 그곳으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35mm 필름 촬영은 마치 빛바랜 사진첩을 넘기는 듯한 아련한 질감을 만들어냈고, 모든 장면이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습니다.
한 장면만 꼽으라면 단연 엘리오의 아버지가 건네는 마지막 위로의 장면이었습니다. 그 어떤 격정적인 사랑 장면보다도, 한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존중하고 보듬는 이 대화야말로 영화가 도달한 가장 성숙하고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됐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섬세한 감정선을 완성하는 핵심이었습니다. 티모시 샬라메는 첫사랑의 설렘, 질투, 혼란, 그리고 이별의 고통까지 복합적인 감정의 파고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엘리오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벽난로 앞에서의 롱테이크 장면은 그의 연기 인생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습니다. 아미 해머 역시 자신만만함 뒤에 숨겨진 다정함과 연약함을 지닌 올리버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며 완벽한 호흡을 보여줬습니다.
아쉬운 것
영화의 의도된 나른함과 느린 호흡은 어떤 관객에게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인물들의 감정이 쌓여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따라가는 연출은 훌륭했지만, 뚜렷한 사건 없이 분위기와 감정의 흐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중반부는 다소 길고 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서사의 추진력이 약해지는 구간에서 집중력을 잃기 쉬웠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이야기가 철저히 엘리오의 시점에서 전개되다 보니 올리버의 내면은 상대적으로 불투명하게 그려졌습니다. 그가 엘리오에게 느낀 감정의 깊이나 이별 후의 심경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올리버라는 인물이 엘리오의 성장을 위한 아름다운 대상 혹은 촉매제로서만 기능했다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의 서사가 조금 더 보충되었더라면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출연진 및 감독
출연진
- 티모시 샬라메 (Timothée Chalamet) — 엘리오 펄먼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17세 소년) /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 아미 해머 (Armie Hammer) — 올리버 (자유롭고 지적인 24세 청년) / 소셜 네트워크, 맨 프롬 엉클 등
- 마이클 스툴바그 (Michael Stuhlbarg) — 펄먼 교수 (아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아버지) / 셰이프 오브 워터, 닥터 스트레인지 등
- 아미라 카사르 (Amira Casar) — 아넬라 펄먼 (엘리오의 어머니)
- 에스테르 가렐 (Esther Garrel) — 마르치아 (엘리오와 교제하는 프랑스 소녀)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Luca Guadagnino) — 이탈리아 감독. 인간의 욕망과 관계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내는 데 탁월한 연출가로,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등을 연출했습니다.
이런 분께 추천
-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영상미에 흠뻑 빠지고 싶은 분
- 첫사랑의 설렘과 아픔을 섬세하게 그린 영화를 보고 싶은 분
- 대사보다 분위기와 감정선으로 흘러가는 영화를 선호하시는 분
- 티모시 샬라메의 인생 연기가 궁금하신 분
한 줄 결론
리뷰 점수 8.8 / 10 — 여름의 공기마저 연기하는, 한 시절을 통째로 붙잡아둔 사랑의 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