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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Review

바람이 분다 | 꿈의 순수함으로 시대의 비극을 덮으려 한, 거장의 가장 아름답고도 논쟁적인 작별 인사

출시일 2013-09-05
플랫폼 넷플릭스
장르 애니메이션, 드라마, 로맨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회차 / 러닝타임 126분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 넷플릭스

리뷰

어떤 이야기인가

<바람이 분다>는 하늘을 동경했지만, 지독한 근시 때문에 조종사의 꿈을 접어야 했던 소년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따라가는 작품이었습니다. 비행기를 날릴 수 없다면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 그는 꿈속에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비행기 설계가 ‘카프로니’를 만나며 설계가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영화는 지로의 청년 시절, 즉 1920년대와 3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그의 꿈과 사랑, 그리고 시대의 비극을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성인이 된 지로는 미쓰비시에 입사해 항공기 설계가로서 비범한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기술 후진국이었던 일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는 서구의 기술을 배우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설계를 더하며 ‘가장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일념에 몰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923년 관동대지진의 혼란 속에서 잠시 스쳤던 소녀 ‘나호코’와 피서지에서 운명적으로 재회하며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두 사람의 행복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나호코는 당시 불치병이었던 폐결핵을 앓고 있었고, 지로가 설계하는 아름다운 비행기는 머지않아 태평양 전쟁의 주력 전투기 ‘제로센’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영화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임박한 상황과 자신의 순수한 꿈이 살상 무기로 변질되는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창작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한 남자의 10년을 차분히 조명했습니다.

잘된 것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자신의 오랜 화두였던 ‘비행’에 대한 애정을 남김없이 쏟아부은 작품이었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수작업 애니메이션 기술은 이 영화에서 정점에 달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부터 지진으로 무너지는 도시의 풍경,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의 유려한 곡선까지, 모든 프레임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기계의 소음을 실제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한 음향 효과는 비행기를 단순한 기계가 아닌, 생명을 가진 유기체처럼 느끼게 만드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주인공 지로의 목소리를 전문 성우가 아닌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에게 맡긴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의 어눌하고 감정이 절제된 목소리는 세상의 풍파보다 오직 자신의 꿈에만 몰두하는 순수한 공학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덕분에 관객은 화려한 영웅이 아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일에만 침잠하는 한 개인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지로와 나호코의 로맨스는 영화의 비극성을 한층 더 깊게 만들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연인과의 애틋한 시간들은 전쟁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장면이나, 지로가 밤새 설계에 몰두하는 곁을 나호코가 조용히 지키는 모습들은 대사 없이도 그들의 사랑과 슬픔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명장면들이었습니다.

아쉬운 것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이자 동시에 가장 큰 한계는 바로 그 ‘아름다움’에 있었습니다. 영화는 제로센 전투기 설계자의 삶을 그리면서도, 그 결과물이 가져온 전쟁의 참상과 가해의 역사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습니다. 지로를 순수한 꿈을 좇는 낭만적인 예술가로만 묘사했을 뿐, 그의 창조물이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에 대한 윤리적 성찰은 끝내 외면했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작품의 주제를 모호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전쟁의 가해 역사를 미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복잡한 감정을 남긴 장면은, 폐허가 된 비행기들 위에서 지로가 카프로니와 재회하는 마지막 꿈이었습니다. “당신의 10년은 어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영화의 대답이 아름다운 꿈의 실현과 파괴라는 양면성을 담고는 있었지만, 두 시간 내내 펼쳐진 꿈의 황홀경에 비해 그 파괴에 대한 성찰은 너무 짧고 미학적으로만 그려져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출연진 및 감독

출연진

  • 안노 히데아키 (Hideaki Anno) — 호리코시 지로 (목소리) /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감독으로 유명하며, 전문 성우가 아님에도 주인공의 무던하고 집념 어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 타키모토 미오리 (Miori Takimoto) — 사토미 나호코 (목소리) / 지로의 연인으로, 맑고 애틋한 목소리로 비극적인 사랑의 감성을 더했습니다.
  • 니시지마 히데토시 (Hidetoshi Nishijima) — 혼조 키로 (목소리) / 지로의 동료이자 친구로, 현실적인 시각으로 지로에게 조언하는 인물입니다.
  • 니시무라 마사히코 (Masahiko Nishimura) — 쿠로카와 (목소리) / 지로의 직장 상사로, 까칠하지만 속정 깊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Hayao Miyazaki)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애니메이션의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오랜 관심사인 비행과 전쟁, 그리고 창작자의 고뇌를 집대성했습니다.

이런 분께 추천

  •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화를 사랑하시는 분
  • 화려한 판타지보다 한 인물의 삶을 따라가는 차분한 드라마를 선호하시는 분
  • 시대적 비극 속에서 피어난 개인의 꿈과 사랑 이야기에 몰입하고 싶으신 분
  • 작품의 역사적, 윤리적 논쟁거리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며 감상할 준비가 되신 분

한 줄 결론

리뷰 점수 7.8 / 10 — 꿈의 순수함으로 시대의 비극을 덮으려 한, 거장의 가장 아름답고도 논쟁적인 작별 인사.

작성자: 실라스 (SI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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